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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시대] ⑭기록을 대신한 판단, AI
  • 김영 기자
  • 등록 2026-02-11 14: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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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 판단이 사라진 자리를 자동화가 채웠다
  • 질문을 닫는 기술은 민주주의를 보조하지 않는다
각자도생 사회는 혼란의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의 판단과 책임이 사라진 상태다. 본 시리즈는 ‘신뢰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불신이 전제가 된 조건에서도 사회가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구조를 묻는다. 그 조건으로 우리는 판단과 책임의 경로가 남는 구조화된 기록을 제시한다.〈편집자 주〉

 

Ⅲ부. 불신 이후의 사회 (11~15편)

각자도생 사회 이후, 무엇이 남는가

 

<목차>

 

⑪ 기록되지 않은 민주주의

⑫ 책임 없는 기록

⑬ 학습하지 못하는 사회

⑭ 기록을 대신한 판단, AI

⑮ 구조화된 기록만이 선택을 남긴다


AI는 어느 날 갑자기 사회의 중심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판단을 밀어낸 것도 아니다. 

 

AI의 확산은 이미 판단을 기록하지 않게 된 사회가 선택한 가장 효율적인 대체물에 가깝다.

 

학습하지 못하는 사회는 판단을 부담으로 인식한다. 

 

판단에는 비용이 따른다. 대안을 비교해야 하고, 기준을 설명해야 하며, 무엇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공동의 판단 구조가 약화된 사회에서 이 비용은 개인과 제도 모두에게 과도하게 느껴진다. 이때 AI는 완벽한 해결책처럼 보인다. 

 

빠르고 일관되며, 감정이 없고, 무엇보다 설명과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AI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무엇을 묻지 않아도 되는지를 정해 준다. 

 

질문을 닫아주는 기술은 부담을 줄여준다.

 

문제는 AI가 판단을 대체했다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변화는 AI가 기록의 구조를 대체했다는 점이다. 

 

판단의 이유와 경로를 남기지 못한 사회에서, AI는 결과 중심의 기록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한다. 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이 구조에서 사회는 효율적으로 보인다. 

 

결정은 빨라지고, 오류는 줄어드는 듯 보이며, 불확실성은 수치로 관리된다. 

 

그러나 이 효율은 학습을 대가로 요구한다. 

 

AI의 결과는 비교 가능하지만, 그 결과가 왜 나왔는지는 축적되지 않는다.

 

AI가 제시하는 결론은 종종 중립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중립성은 착각이다. 

 

어떤 데이터를 사용했고,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는 누군가의 판단을 전제로 한다. 

 

다만 그 판단이 기록되지 않을 뿐이다. 

 

판단의 흔적이 지워질수록, AI의 결론은 더 권위적으로 작동한다.

 

이 과정에는 음모도 악의도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사회적 저항 없이 작동한다는 점이 더 위험하다. 

 

질문이 사라지고,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AI는 민주주의를 공격하지 않는다. 


이미 약화된 민주주의를 관리 가능한 상태로 유지할 뿐이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AI는 구원의 기술이 아니다. 그렇다고 위협만도 아니다. 

 

AI는 판단을 기록하지 못한 사회가 선택한 합리적 귀결이다. 

 

판단을 다시 기록하지 않는 한, AI는 문제의 해답이 아니라 문제의 연장선에 머문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등장한다. 

 

AI가 있는 사회에서 선택은 가능한가. 

 

자동화된 결론 속에서도, 사회가 스스로를 수정할 여지는 남아 있는가. 그 답은 기술이 아니라 기록의 방식에 달려 있다.

 

AI는 판단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판단이 기록되지 않는 사회를 대체했다. 

 

질문이 닫힌 사회에서 기술은 학습을 도울 수 없다.

 

다음 편에서는 AI를 배제하지 않고도, 불신 사회에서 선택을 남길 수 있는 최소 조건, 즉 구조화된 기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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