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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녹색 아이러니] ① 녹색정책의 본질은 황금정책
  • 김영 기자
  • 등록 2025-08-29 18: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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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의 이름으로 포장된 금융 지배
  • 글로벌 ESG 점수의 덫
  • 녹색 아닌 황금이 흐른다
ESG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 ‘지속가능성’의 이름으로 포장된 절대 명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환경보다 금융, 사회적 가치보다 자본 흐름이 우선한다. 본 기획 시리즈는 ‘녹색정책은 곧 황금정책’이라는 아이러니를 추적한다. 첫 편에서는 ESG가 어떻게 글로벌 금융의 점수판으로 변모했는지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뉴욕 금융가를 장악한 블랙록·뱅가드, 녹색으로 포장된 ESG 뒤에 흐르는 것은 황금이었다. 한미일보 합성

ESG, 환경인가 금융인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장한 개념 정도로만 인식됐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 투자시장의 표준 언어가 됐다. 한국 금융위원회는 2021년 1월 “2025년까지 코스피 상장사 전부에 ESG 공시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ESG가 환경을 개선하기보다 자본을 통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운용자산 약 11조 달러)과 뱅가드(7조 달러)는 ESG 점수를 투자 기준으로 삼는다. MSCI, 서스테이널리틱스 같은 평가사가 부여한 점수는 기업 생존을 좌우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우리가 친환경 투자를 늘리는 이유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토로했다.

 

점수화된 지속가능성

 

ESG의 문제는 ‘점수화’에 있다. MSCI는 8,500여 개 글로벌 기업에 등급을 매기고, 서스테이널리틱스는 17,000개 기업을 평가한다. 등급은 단순한 보고서 숫자가 아니라 곧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칼이다. 점수가 낮으면 대형 연기금과 글로벌 펀드는 해당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한다.

 

한국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전자·현대차·SK 등 주요 기업은 매년 수억 원을 들여 평가사와 컨설팅 계약을 맺고 점수를 관리한다. 문제는 이 기준이 ‘국제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되지만, 실제로는 평가사마다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블룸버그 조사에 따르면 동일 기업의 ESG 점수 편차가 평가사 간에 30% 이상 차이 나는 사례도 있었다. ‘국제 표준’이란 명분이 실제론 불투명한 민간 기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한국 정책의 자율성은 어디로 갔나

 

한국 정부와 금융위원회는 ESG 제도를 선진국 수준에 맞추겠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 실체는 국제 평가사의 요구를 국내 법제에 반영하는 과정이다. 금융위는 2021년부터 ‘K-ESG 가이드라인’을 배포했으나, 사실상 글로벌 기준을 그대로 가져온 수준이다.

 

이 때문에 정책 자율성은 약화됐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친환경 정책을 설계하더라도, 글로벌 평가사의 점수판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자금 조달은 어려워진다. “국제 표준을 따르지 않으면 고립된다”는 논리는 곧 “국제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제약으로 이어진다.

 

금융의 흐름은 황금으로 향한다

 

ESG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뒤 국제 금융시장은 거대한 전환을 겪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2023년 발간한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ESG 채권 발행 규모는 5조 달러를 돌파했다. 친환경 채권을 발행하지 않는 정부와 기업은 사실상 국제 자본시장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은행, 한국전력, 대기업들은 앞다투어 ‘그린본드’를 찍어냈다. 발행액은 2024년 기준 누적 80조 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금융사는 수수료와 운용 수익을 챙겼고, 실제 현장에서는 환경 개선 효과가 뚜렷하지 않았다. 녹색의 간판 아래 황금이 흘러간 것이다.

 

국제 비교: 미국의 반(反)ESG 흐름

 

흥미로운 점은 모든 국가가 ESG 질서에 무비판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공화당 주(州)들은 ‘ESG 투자 금지법’을 통과시키며 블랙록 등 자산운용사에 반기를 들고 있다. 텍사스주는 “ESG는 에너지 산업을 죽이고, 자국민 일자리를 파괴한다”며 주 연기금의 ESG 투자 철회를 선언했다.

 

반면 EU는 오히려 ESG 공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2021년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정(SFDR)’을 시행해 모든 금융기관에 상세 보고를 의무화했다. 한국은 현재 EU 모델을 적극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결국 한국의 길은 ‘EU식 ESG 종속’을 택한 셈이다.

 

녹색정책은 곧 황금정책

 

ESG는 환경과 사회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금융 권력이 만든 새로운 질서다. 자본은 ESG라는 이름으로 점수를 매기고, 기업과 정부는 그 점수를 맞추기 위해 정책을 바꾼다. 물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나 일부 온실가스 감축 성과처럼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녹색정책은 곧 황금정책’이라는 인식은 더 이상 은유가 아니다.

 

한국은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EU식 규제 수입을 계속 확대해 안정성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식 회의론처럼 자율적 대안을 모색할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녹색이라는 이름 뒤에 흐르는 것은 황금이며, 그 황금은 글로벌 금융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이다.

 

<다음 편 예고>


②편에서는 태양광·풍력 정책 집행 과정에서 나타난 산림 벌목, 폐패널, 마을 분열 등 ‘친환경의 역설’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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