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식 한국전략연구소 소장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가 전 세계 미군 장군과 부사관 최고위지도자 800여 명을 메릴랜드주 콴티코(Quantico)로 9월 30일부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는 전통적으로 극히 이례적인 조치다. 현대의 미군 지휘체계는 화상회의와 전자통신 시스템이 완비되어 있어, 단순한 상황공유나 정책 지시를 위해서라면 물리적 집합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국방 수장이 세계 각지의 4성 장군·제독, 3성급 지휘관, 주요 부사관 리더들을 한자리에 모으려 한 것은 단순한 군사회의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를 전제로 한 “조직적 대전환” 신호로 읽을 수 있다.
외부 위기요인: 러우전쟁·베네수엘라·양안해협은 충분치 않다
이번 조치가 알려지자 일부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선 확대, 베네수엘라 정정 불안, 대만해협 위기 가능성을 연결해 해석하려 했다. 그러나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들 변수는 전군 최고 지휘부를 물리적으로 소집할 만큼의 절박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미국의 전략 목표가 상당 부분 달성된 상태다. 미군이 직접 전투에 개입하지 않고도 러시아의 전략적 소진을 유도하고, NATO 결속과 유럽 방위력 강화및 방위비지출 5% 증대라는 목적을 달성했다.
현시점에서 미국이 추가 대규모 개입을 계획하거나 전면적 전략 수정이 필요할 정도로 전황이 급변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 마약 카르텔 소탕 및 정정 불안은 미주 안보 차원에서 관심 사안이지만, 미군 전체 지휘부를 집합시켜야 할 국가적 전략 전환급은 아니다. 과거 파나마 침공이나 멕시코 마약전 대응에서도 이 정도의 전군급 회의를 소집한 전례는 없다.
중국의 양안사태(대만해협) 역시 단기적 충돌 가능성이 제한적이다. 중국은 경기 둔화와 내부정치 불안, 외교적 고립, 기술제재 심화 등으로 전면전 여건을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미국 역시 대만 방어력 강화와 억제력 구축을 진행 중이며, 당장 긴급 대책을 논의할 수준의 위기 신호는 없다.
따라서 이번 소집은 단순한 외부 안보위협 대응이라기보다 내부구조 재편이라는 보다 근본적 이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타당하다.
내부요인: 4성 장군 20% 감축과 사령부 재편의 신호
헤그세스 장관은 이미 취임 직후부터 고위 지휘체계의 과도한 팽창을 비판하며 개혁을 예고해왔다. 최근에는 4성 장군 및 제독 직위의 20% 감축을 지시했고, 전반적으로 모든 장성·제독 직위 최소 10% 삭감 명령을 내렸다는 보도까지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숫자 줄이기가 아니라 군 상층부 구조를 효율화하고, 임무 중심의 기동성 있는 지휘체계로 전환하려는 강한 의지를 반영한다.
냉전 이후 미군은 전 세계 파병과 복잡한 연합작전, 테러와의 전쟁, 신흥 기술전쟁 대응을 위해 사령부를 세분화하고 장군직을 지속 확대해왔다. 그러나 이는 지휘 라인을 중첩시키고, 작전·행정 간 비효율을 초래하며, 막대한 예산 부담으로 이어졌다. 특히 2차 대전 직후 8명이었던 4성장군이 40명까지 증대되어 다수의 4성 지휘관이 존재하는 현실은 전통적 의미의 합참-전투사령부 중심 체계와 괴리를 낳았다.
헤그세스의 이번 전군 소집은 바로 이 구조적 슬림화와 사령부 통폐합을 가시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국방전략서를 발간을 앞두고 사령부 통폐합을 해야 하는 문제가 정리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반발을 무마시켜야 한다. 기존 권한과 지위를 잃게 될 장성들에게 정책적 취지를 설명하고, 내부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정치적·심리적 설득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남게 될 지휘관들에게는 임무 부담 증가와 책임 강화를 이해시키고, 새로운 리더십 문화를 공유하는 장이 필요했을 것이다.
새로운 국방전략서(NDS)와의 연계
미국은 곧 국방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 NDS)을 발표할 예정이다. NDS는 미군의 전력 구조, 예산 배분, 작전 개념을 결정하는 핵심 문서로, 향후 수년간 군의 방향을 규정한다.
이번 NDS는 다음과 같은 흐름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규모 지상군 중심에서 기술 융합·다영역 작전(MDO) 중심으로 전환
AI, 사이버, 우주, 정밀타격 능력 강화가 핵심이며, 과거처럼 장성 중심의 방대한 관료적 지휘체계가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연합·동맹 기반 억제전략 유지
그러나 미군 스스로는 규모보다 질적 우위, 신속기동, 민첩한 사령부를 추구할 것이다.
예산 재배분과 국방산업 개혁
고위직 감축은 예산절감을 통한 첨단 전력 투자와 직결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번 소집은 NDS 발표를 앞두고 고위 지휘관들에게 새로운 전략적 패러다임을 직접 주입하고, 변화에 대한 내부적 공감대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전통·문화적 의미: ‘리더십 직접통제’로의 회귀
미군은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조직이다. 장관이 전 세계 지휘부를 직접 소집해 연설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것은 단순한 회의 이상의 상징적 행위다. 이는 “미군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직접적 신호”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더 이상 관료적 관성은 용납하지 않겠다. 고위층의 안일한 구조 유지와 직위 보존 문화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경고다. 기술혁신과 전략 전환에 맞는 민첩한 지휘체계로 재편한다. 미중 전략 경쟁, 신기술 전쟁, 예산 압박이라는 현실에서 ‘작고 강한 지휘부’가 필수라는 선언이다.
정치·국방 수뇌부의 직접적 리더십을 강화한다.
전쟁 억제와 준비의 중심축을 다시 국방부와 대통령에게 집중시키려는 움직임이다.
한국과 동맹에 주는 함의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동맹 작전구조 변화: 미군의 지휘구조가 단순화되면, 한미 연합 지휘체계에도 조정이 불가피하다. 특히 주한미군사령부 및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역할이 재정의될 가능성이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3성장군으로 격하되고 주일미군사령관이 4성장군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작전 책임의 전환: 미군이 더 빠르고 기민한 ‘핵심 지휘부’ 중심으로 변할 경우, 한국군의 자율성과 책임범위 확대가 병행될 수 있다. 이는 전작권 전환 논의와도 연결될 수 있다. 주한미군은 유엔군사령부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고 유엔사령부는 일본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국방개혁 모델: 미군이 ‘고위층 축소 + 기술중심 전환’을 선택한 것은 한국에도 참고할 만한 사례다. 인구 감소와 예산 제약 속에서, 계급 피라미드를 줄이고 질적 전력을 강화하는 방향이 유효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전군 고위 지휘부 집합 명령은 단순한 위기대응이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선은 이미 전략 목표를 달성했고, 베네수엘라 사태나 대만해협 위기도 당장 전군급 긴급회의를 요구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 이번 소집의 본질은 장성 감축과 사령부 재편을 포함한 대규모 조직개혁, 그리고 새로운 국방전략서(NDS) 발간을 앞둔 리더십 정비다.
미군은 지금 ‘더 작고, 더 빠르며, 더 유연한’ 지휘체계로 재편되려 한다. 이는 전통적 군 조직문화와 고위층 이해관계에 도전하는 대담한 조치다. 미국이 이렇게 움직인다는 사실은 동맹국인 한국에도 경고이자 기회다. 변화하는 미국의 전략적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한국군 역시 시대에 맞는 지휘·전력 구조혁신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론이니만큼 오판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부사관 선임자까지 집합시킨 것은 부대통폐합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본다.
주은식 한국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