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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山 문학읽기] 한강 ‘소년이 온다’… 감정과 기억의 정치학
  • 松山 시인
  • 등록 2026-02-14 22: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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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득당한다는 사실 모른 채 가치 판단 내면화
  • 문학은 선동하진 않지만 효과 면에서 정치적

서점에 ‘소년이 온다’가 진열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5·18을 다룬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독자는 이 작품을 고통의 기록, 희생자의 증언, 인간 존엄의 복원으로 읽는다. 그러나 작품을 감동의 차원에만 두지 않고 서사 구조와 사상적 효과의 차원에서 분석해 보면, 이 소설은 단순한 비극 재현을 넘어선다. 

 

피해자의 신체와 내면에 철저히 밀착하는 전략

 

이 작품은 사건을 특정한 윤리 구조 속에 배치하고, 독자의 판단을 감정의 경로를 통해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한다. 즉 이 소설은 고통을 통해 기억을 조직하고, 그 기억을 통해 정치적 감각을 형성하는 텍스트다.

 

이 작품의 핵심 전략은 피해자의 신체와 내면에 철저히 밀착하는 것이다. 소년의 죽음, 체육관의 시신, 고문 이후 남은 상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정치적 배경 설명이나 권력 내부의 구조 분석은 거의 제시되지 않는다. 군은 폭력의 집행자로 등장하고, 시민은 고통을 겪는 존재로 위치한다. 서사는 이 둘의 도덕적 대비 위에서 전개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가 아니라 배치 방식이다. 문학은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배제하는가에 따라 해석을 만든다. 

 

이 소설은 사건의 복합적 맥락보다 고통의 밀도를 선택했다. 그 선택은 독자의 사고 과정을 바꾼다. 독자는 사건을 분석하기보다 먼저 공감한다. 공감은 강력하다. 그러나 공감이 선행되면 비판적 질문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자유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 지점이 핵심 문제다. 자유주의는 국가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라는 제도가 왜 존재하는지도 묻는다. 

 

국가는 질서 유지와 권리 보호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권력이 오남용될 때는 통제해야 하지만, 국가 자체를 도덕적 악으로 환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소년이 온다’의 서사는 국가를 거의 일방적 폭력의 장치로 제시한다. 권력 내부의 분열, 책임 구조의 복잡성, 제도적 실패의 역사적 조건은 중심에 오지 않는다. 

 

독자가 작품을 통해 획득하는 인식은 ‘국가는 시민을 억압한다’ ‘권력은 구조적으로 폭력적이다’ ‘시민은 윤리적 우위에 있다’는 인식이다. 이 도식은 정치적 입장과 쉽게 연결된다. 작품이 직접 이념을 선전하지 않더라도, 서사 구조 자체가 특정한 정치 감각을 형성한다.

 

사상 직접 외치지 않고 세계관 전달

 

또 다른 문제는 기억의 절대화다. 5·18은 이미 법적 판단과 국가적 기념 체계를 갖춘 사건이다. 역사학은 자료와 증언을 교차 검증하며 사건을 연구한다. 

 

그러나 문학은 사실과 허구를 결합한다. 허구 인물의 고통은 실제 역사적 장면과 겹쳐지며 독자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통합된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이 기억은 강력한 도덕적 권위를 획득한다. 그 권위는 토론을 위축시킬 수 있다. 사건이 윤리적 절대 영역으로 고정되면,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는 쉽게 도덕적 타락으로 오해받는다. 

 

자유주의는 기억을 존중하지만, 동시에 어떤 사건도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성역화는 정치적 에너지로 전환되기 쉽고, 문학은 그 전환을 감정의 힘으로 가속할 수 있다.

 

문학은 노골적이지 않다. 정치 연설은 구호를 외친다. 문학은 장면을 보여준다. 독자는 자신이 설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가치 판단을 내면화한다. 

 

‘소년이 온다’는 고통을 세밀하게 재현함으로써 국가 권력에 대한 깊은 불신을 정서적으로 각인시킨다. 이것은 선동과는 다르다. 그러나 효과 면에서 보면 정치적이다. 작품은 독자의 마음속에 특정한 감각을 남긴다. 

 

그 감각은 이후의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문학이 사상을 직접 외치지 않아도 세계관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작품은 문학적 성취는 논외로 하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고통을 중심에 둔 서사 구조는 독자의 판단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끈다.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보자면, 문제는 비판 자체가 아니라 균형의 부재다. 국가 권력의 폭력은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제도의 복합성과 역사적 조건까지 함께 조명하지 않는다면, 사건은 도덕극으로 축소된다. 

 

감정이 이성을 압도할 때 공론장은 좁아진다. 문학을 읽는 일은 감동을 느끼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 감동이 어떤 가치 전제를 전제하는지, 어떤 질문을 배제하는지까지 살피는 일이다. 자유는 분노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제도와 토론, 그리고 냉정한 분석 위에서 유지된다.

 




◆ 松山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이승만학당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 고문,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을 공동 번역했다. 松山은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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