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전남 목포신항에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24.4.15. 연합뉴스 목차
1. 안동댐 시랍 시신과 음모론, 인간 심리의 그림자
2. 세월호 10주기, 기억이 권리 아닌 권력으로 바뀌다
3. 5.18 기억의 제도화 , 국가가 정한 진실은 진실인가
“기억하라”가 “투표하라”는 명령으로 소비
2024년 4월, 대한민국은 두 개의 거대한 사건을 마주했다. 하나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 그리고 또 하나는 세월호 참사 10주기였다. 정확히 엿새 간격. 4월 10일 선거가 끝난 직후, 4월 16일 세월호 기념일이 다가오자, 전국은 다시금 노란 리본으로 뒤덮였다.
문제는 그 리본이 순수한 추모의 상징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정치권과 미디어, 시민사회는 이 거대한 집단기억을 애도의 언어로 포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 선거 전략과 정치적 프레이밍이 작동하고 있었다.
서울 광화문, 안산 화랑유원지, 전국의 교회와 학교, 심지어 대형 포털 메인까지 ‘기억하자’는 슬로건은 넘쳐났고, 정치인들의 SNS에는 거의 경쟁적으로 노란 배경의 프로필 사진이 게시됐다.
그러나 그 사진들 속에는 ‘투표하라’는 무언의 명령이 숨어 있었다. “정권교체 없이는 진실규명도 없다”, “총선은 심판의 날”, “침묵하면 다시 되풀이 된다” 이런 표현들은 더 이상 순수한 추모로 보기 어려웠다.
슬픔은 전시되었고, 분노는 동원되었다. 정치가 슬픔을 호출했고, 유권자는 감정으로 반응했다.
이러한 현상은 ‘정서의 정치화(emotional politicization)’로 설명할 수 있다. 정치학자 머레이 에델먼(Murray Edelman)은 “감정은 정치적 대중동원의 가장 유용한 수단”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세월호는 그 비극성과 상징성 때문에 감정을 동원하기에 이상적인 사례였다.
정치인은 울었고, 유권자는 분노했고, 플랫폼은 이를 계산했다. 특히 유튜브는 이 감정을 수치화했다. 총선 직전부터 10주기까지 ‘세월호’ 키워드를 활용한 영상은 폭증했고, “10년째 진실은 묻힌다”, “누가 기억을 방해하는가”, “잊지 말자, 반드시 바꾸자”는 제목의 콘텐츠가 조회수 상위권을 점령했다.
수익화가 가능한 영상에는 모두 광고가 붙었고, 슈퍼챗 후원도 따라붙었다. 슬픔이 시청률이 되고, 분노가 수익이 되던 구조였다.
정치인들도 이 생태계를 외면하지 않았다.
좌파 정당은 공식적으로 10주기 성명을 냈고, 일부 당 대표는 기념식에 참석해 “책임정치로 응답하겠다”고 발언했다. 보수 정당은 상대적으로 말을 아꼈지만, 일부 후보들은 “진실을 정파적으로 이용하지 말자”는 메시지로 맞불을 놓았다. 결국 양측 모두 세월호를 정치화의 장으로 가져갔다.
총선 캠페인에서도 세월호는 작용했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지역구 후보는 유가족 초청 간담회를 진행했고, 캠프 홍보물에도 “진실을 밝히는 국회가 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심지어 유가족 측 일부 인사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인증이 SNS를 통해 공유되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자발적인지, 전략적인지 가르는 것은 어렵다. 다만 명확한 건, 세월호가 정치적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는 ‘기억’의 대상인가, ‘동원’의 도구인가?
정치적 정당성이 부족한 정당이나 후보가 세월호를 호출해 자신을 도덕적 주체로 포장하는 것은 공정한가? 정치적 논쟁과 당파적 선동이 세월호를 둘러싼 기억의 진정성을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억은 권리일 뿐 아니라 책임이다. 그러나 지금의 기억은 권력이 되었다. ‘기억하라’는 구호는 정치적 정체성과 윤리적 우월성을 인증하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 프레임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비난받는다.
침묵은 외면으로 해석되고, 냉철한 분석은 무감각으로 치부된다. ‘기억하지 않는 자’는 ‘함께하지 않는 자’로 분류된다.
정치가 애도를 삼킨다. 미디어는 감정을 증폭시킨다. 유권자는 슬픔에 설득된다. 이 삼각 구조는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음 선거, 다음 기념일, 다음 비극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할 것이다. 플랫폼은 반복하고, 정치인은 호출하며, 우리는 분노하거나 외면할 것이다.
10년 전, 우리는 바다를 마주했다. 그리고 10년 후, 우리는 여전히 그 바다를 호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바다가 가리키는 것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제 전략이고, 명령이고, 상품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이제는 물어야 한다.
왜, 누구를 위해, 언제까지 기억할 것인가?
핵심 개념 정리 및 분석
정서 정치화: 슬픔·분노 등 감정을 정치 동원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현상.
정치적 소비재: 원래 비정치적이거나 보편적이어야 할 사건이 선거 전략에 편입되는 구조.
플랫폼 확산 메커니즘: 유튜브·SNS 등이 감정 프레임을 강화하고 수익으로 연결.
<다음 편 예고>
죽음을 소비하는 사회- ❸
국가가 정한 진실은 진실인가 – 5·18을 둘러싼 기억의 제도화와 소비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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