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공동관리구역에 중국이 설치한 직경 70m, 높이 71m의 구조물 ‘셴란 2호’. [신화=연합뉴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의 공개 발언록에는 비핵화, 북핵, 서해 불법 구조물 등 핵심 안보 의제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현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원론적 표현만 했고, 시진핑 주석은 북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는 회담 후 브리핑에서 비핵화 3단계 해법을 설명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비공개 회담에 대한 사후 설명일 뿐, 발언록에는 남지 않았다. 이번 회담은 공개 발언에서는 민감한 북한 비핵화 의제를 빠뜨려 북핵을 용인하는 꼴이 되었다.
서해 잠정조치수역 문제 역시 회담 발언록에는 없었고 공동관리나 중간선 설정, 중국 구조물 철수 등은 모두 회담 후 정부가 밝힌 내용이다.
정부는 서해를 ‘평화롭고 공영하는 바다’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공감하고 구조물 문제에 대해 대화를 지속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기존의 불법·일방 행위를 기정사실화한 뒤 공동관리라는 외피로 제도화하자는 굴욕적 태도다. 서해 구조물 문제는 중국을 대변한 꼴이 되었다.
서해 공동관리는 관리인가? 영토 포기인가?
중국은 2018년 이후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안팎에 총 16개의 구조물을 일방적으로 설치했으며, 이 중 우리 수역(PMZ 내부)에는 양식장 2기(선란 1·2호)와 통합관리 플랫폼 1기 등 총 3개를 불법적으로 설치했다.
이는 한중어업협정이 금지한 ‘영구 시설물 설치’ 조항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서해를 ‘평화롭고 공영하는 바다’로 만들어가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
잠정조치수역은 원래 충돌을 피하고 공동 자원을 관리하기 위한 공간이지 영토를 공동관리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번 회담 결과 중국의 일방적 행동을 한국이 사실상 방치하는 구조로 변했다. 중국은 구조물을 세우고, 시추를 하고, 불법 조업을 반복하며 실효 지배의 증거를 쌓는데, 우리는 단속·감시 예산을 삭감하면서 대응 역량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국제법은 분쟁이 생기면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본다. 행동한 쪽이 권리를 갖고, 멈춘 쪽은 권리를 잃는다. 정부는 ‘대화 지속’과 ‘협의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동안 중국은 기록을 남기고, 기정사실을 만들고, 국제사회에 “우리가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를 축적한다.
서해 공동관리라는 틀이 한국의 해양주권과 단독 조치를 제약한다. 공동관리 체제가 도입되면 한국은 단속·조사·철거 같은 기본적 주권 행위에 대해서조차 중국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반면 중국은 이미 벌여놓은 기정사실을 제도 속에 고정시키며 자신들의 이익을 안전하게 보호한다.
국가의 영토는 패전(敗戰)으로만 잃는 것이 아니다
영토 수호 개념이 약하고 분쟁에서 대응을 멈추면 영토를 잃는다. 조선은 전쟁 한번 치르지 않고도 외교적 무기력과 대응 실패로 국권을 빼앗겼다. 총성이 울리지 않아도, 침략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사용한 ‘회색지대 전술’을 서해에서도 재현하여 서해의 중국 내해화와 항행 자유 침해로 이어질 위험성이 제기된다.
전방부대에 전달된 비무장지대(DMZ) 관리 지침에는 “군사지도와 유엔사 참조선이 다를 경우, 둘 중 남쪽 선을 기준으로 판단하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군사적 긴장 완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6·25 전쟁에서 피로 지킨 영토를 양보하고 포기하는 행위였다.
DMZ는 총을 쏘지 않기 위해 만든 공간이지, 주권을 포기하려고 만든 공간이 아니다. 감시가 줄고, 기록이 사라지고, 접근이 제한되면 그곳은 더 이상 완충지대가 아니라 영토 공백지대가 된다. 공백은 언제나 강한 쪽이 채우게 되는 법이다. DMZ에서의 감시 공백은 단순한 군사 조치가 아니라 영토 관리의 실패다.
국제 분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비활동이다. 비활동은 곧 묵인이고, 묵인은 곧 권리의 상실이다. 영토는 전쟁으로만 잃는 것이 아니라 눈치와 침묵 속에서 잃을 수 있다는 것을 현(現) 정부가 보여주고 있다.
영토 수호… 헌법이 부여한 가장 기본적·절대적 책무
국가의 영토 수호는 헌법이 부여한 가장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책무다. DMZ에서의 영토 양보와 감시 공백, 서해에서의 소극적 대응은 하나의 메시지로 읽힌다.
국가가 국토 수호를 멈추는 순간, 영토는 사라진다. 국가는 지금이라도 행동해야 한다. 기록하고, 감시하고, 항의하고, 현장에서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영토는 협상의 카드가 아니라 국가 존속의 뿌리이며, 그 뿌리를 지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국제사회는 분쟁이 생기면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본다. 행동하지 않는 국가는 권리를 잃는다. DMZ는 주권을 포기하는 완충지대가 아니며, 서해는 인구 비례로 나눌 공간이 아니고, 공동관리라는 이름으로 내줄 공간도 아니다. 정부는 국민과 미래 세대가 살아갈 영토를 안정적으로 관리·보호할 책임이 있다.
회담 이후의 단순한 설명과 입장 표명으로 국익과 안보를 자해한 외교 참사를 덮진 못한다. 민심과 군심은 정부가 안보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대응하는 전향적 자세를 취할 것을 요구하며, 군은 지속적이고 실효적인 서해 침탈 대응으로 대한민국 영토를 수호할 것을 촉구한다.
한미일보 편집위원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